그냥 해 본 생각

다른데에서는 말도 못하면서

A Bank Clerk 2019. 5. 26. 22:37

다른데에서는 말도 못하면서

과잉서비스와 갑질이 만연한 한국사회지만 나는 밖에서 다른 사람에게 큰소리를 쳐본 기억이 없다. 성격 자체가 화내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긴 하지만 스스로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여유를 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큰 프라이드였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 이런 프라이드는 가차없이 무너져 내렸다. 작은 아이에게 가끔 너무 크게 화를 내기 때문이다. 안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어느새 아이에게 감정을 토하듯이 쏟아내는 나 자신을 보면 내가 이러려고 부모가 되었나 하는 자괴감도 든다. 내가 밖에서 좋은 사람일 수 있었던 이유는 내 자신의 온건함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내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힘 좀 세다고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골목대장처럼, 내 인격의 수준이 그 정도인 것이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미숙한 아빠의 분노

아내와 쇼핑을 갔는데 둘째는 잠이 들었고, 첫째는 엄마를 따라가지 않고 차에 있겠다고 했다. 아내가 쇼핑을 하는 동안, 나는 복잡하고 공기가 탁한 지하주차장 대신 인근 그늘에 차를 세우고 좀 쉬기로 했다. 하지만 차에서 쉬는 도중 둘째가 잠에서 깨어서 짜증을 내기 시작했는데, 오늘 따라 나 자신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린 아이가 잠에서 깨면 당연히 짜증은 나기 마련인데, 내가 지나치게 과민하게 대응한 것이다. 내가 별 것 아닌 일에도 화가 크게 나고 실제로 분노를 표현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와 부모의 권력관계에서 부모는 거의 절대적인 우위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잠에서 일찍 깨어 좀 짜증을 냈다가 삼십대 후반의 미숙한 어린이이의 화를 받아줘야 했다. 옆에서 보던 큰 딸은 이제 정확한 상황판단 가능할텐데 민망했다.

 

나만 그런건 아니다.

사실 둘째에게 화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화를 못 참아서 일을 그르치는 아마추어 같은 모습이 내게도 있다는 건 나도 좀 당황스럽다. 난 다혈질이라서 항상 손해를 본 사람도 아니었다. 아는 형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자신도 자기 아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손이 올라갈 정도로 화가 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나마 좀 위안이 되었다. 나만 이렇게 밑천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구나 길을 걷다보면 아이에게 감성을 쏟아 붓는 다른 부모들을 종종 볼 수 있긴 하다.

 

아빠보다 낫다.

자기 전에 둘째는 넉살 좋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게 장난을 친다. 사실 사과는 아까부터 했다. 둘째는 나보다 더 깔끔하게 갈등을 마무리할 줄 안다. 다음 번에는 나도 둘째 딸처럼 성숙하게 화가 나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까? 둘째에게 항상 이야기 하는 것처럼 나 자신에게도 감정코칭을 해 줘야겠다.

아이가 짜증을 내서 좀 화가 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어린아이가 좀 짜증낸다고 너도 똑같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네가 느끼는 감정은 짜증이야. 짜증이 날 수는 있겠지만 아이들이 보는 눈도 있으니 좀 참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