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이가 되어
다시 아이가 되어
휴일은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는 귀한 시간이기도 하다. 평일에는 씻기고 먹이느라 사실 충분히 놀아주기는 어려울 때가 많다. 어제는 현충일이라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지 않고 나와 함께 있었다. 아내는 출근을 해서 아이들은 하루를 온전히 나와 함께 있었다. 미세먼지가 때문에 점심을 밖에서 먹은 뒤에는 쭉 집에서 놀았는데, 나는 오후 3시 정도에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서 아이들에게 유튜브를 틀어주고 낮잠을 잤다.
30분 정도의 낮잠에서 깨어나자 어제 못했던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짜피 아이들이 보기 시작했는데…’ 하는 생각이었을까? 나는 한 쪽에서 홈페이지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홈페이지 제작은 아무래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진척이 잘 되지 않았다. 원래는 빨리 마치고 나가서 아이들과 놀아주려고 했는데 계획과는 달리 아이들은 그렇게 오후 내내 ‘유해한 영상’에 노출되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 둘째가 “아빠 그만 볼래요” 라고 할 정도로 오랜 시간 영상을 보자, 내 마음에도 약간의 죄책감이 올라왔다. 영상은 아이들에게 너무 강한 자극이라서 가능하면 보여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던데, 이론과 실제는 이렇게 다르다.
둘째는 슬슬 잠이 왔고 오후 시간을 탕진한 나는 어느덧 저녁준비를 해야했다. 준비 내내 들러붙는 둘째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겨우 저녁준비를 마쳤다. 허섭한 저녁 메뉴였지만 고맙게도 아이들은 맛있게 잘 먹어줬다. 막상 맛있다는 아이들을 보니 좀 미안했다.
나도 이제 어느덧 휴직 10개월차가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메뉴 개발도 띄엄띄엄하게 되고 집안일도 좀 소홀할 때가 많았다. 집안일이 그때그때 평가해주는 사람이 없고, 반복되는 일이기 때문에 내 마음가짐이 예전 같지 않았던 것 같다. 큰 딸에게 자기 할일을 스스로 하라고 잔소리를 하는데 사실 나도 우리 아이들과 별반 다를게 없다.
저녁을 먹고는 아이들과 늦게 집 앞 놀이터에 나갔다. 아이들과 잡기 놀이를 하는데 아이들은 무척이나 재미있어 했다. 아이들이 커서 이제는 아이들과 뛰어 놀면 나도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이다. 한시간 정도 놀고 저녁 9시 정도 집에 돌아오는데 아이들이 기운이 없다.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났다. 그때는 나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뛰어 놀았었다. 오늘, 예전 그 때의 나처럼 아이들은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아빠 너무 재미있었어.” 첫째가 남은 기운을 쥐어짜서 하는 말에 행복했다. 러너스하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이들과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어쩌면 오늘이 나중에 우리 딸이 떠올릴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되지 않을까?
오늘 나는 좀 힘들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오후에는 아이들을 방치했다. 저녁식사 준비도 사실 엉망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저녁이 맛있었고 저녁 놀이가 재미있었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은 나에게 너무나 너그럽다. 난 오늘 어른 답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지친 내가 기운을 차릴 때까지 의젓하게 기다려줬다.
내가 가장 어른다웠을 때는 직장을 처음 잡은 그 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직장을 잡고 적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의 한계를 보지는 않았다. 나는 그 때 어른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다. 모든 일이 통제 가능했다. 시간은 흘렀지만 난 그 때보다 더 아이처럼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무척이나 벅찬 일이다. 자주 나의 한계와 만난다. 한계와 만날 때 나는 나만 생각하게 된다. 퇴행일 수도 있지만 나도 하고 싶은 것이 있고 때로는 쉬고 싶다. 그런 마음이 아이와 함께 있을 때 드는 것이 문제인데, 아이들에게 좀 미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부족한 부분을 그냥 넘어가줘서 무척이나 고맙다.
“아빠가 오늘은 좀 힘들었어. 미안해. 하지만 오늘 나도 재미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