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가 알지 못했던 것들_데카르트의 오류, 안토니오 다마지오
난 누구? 또 여긴 어디?
성경에서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이 예수님께 묻는다. 여러 번 결혼을 한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는 천국에서 어떤 사람의 아내인가? 그 질문에 예수님은 답한다. 부활한 사람들은 결혼하는 일이 없으며 천사와 동등하다.(누가복음 20장 35-36절) 그 말을 정리하면 부활하더라도 지금 사는 모습과 같지 않다는 말이다. 역설적으로 예수님이 너희 생각과 같은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으로도 볼 수 있다. 이대로라면 흔히 ‘천국 가서 가족을 만난다’는 말은 사실 성경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부활한 나는 과연 ‘나’일까? 하는 의문도 든다. 예수님이 말하는 ‘부활한 사람들’은 어떤 상태이길래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우선 ‘나’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여러 이미지와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그의 저서인 ‘데카르트의 오류’에서 ‘나’에 대한 정의를 한다. 그에 따르면 ‘나’는 자극으로부터 생기는 이미지와 그것을 인식하는 자아로 이뤄진다. 자아는 ‘나’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는 주체이고 모든 자극을 받는 주체이다. 우리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를 생각해보면 잠에서부터 각성한 ‘나’는 다시 자신을 인식하고 외부로부터 혹은 내부로부터 자극을 다시 받는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정보가 뇌의 한 부분으로 모아져서 처리되지는 않으며 사고는 뇌 신경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는 이미지를 연결시켜서 이뤄진다. 재미있는 것은 저자가 ‘나’에 영향을 주는 것은 단순히 뇌 신경 뿐 아니라 각종 장기나 신체 조직도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사람은 신경질적이 되기 쉽고 이 짜증이 그 사람의 행동과 결정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의문은 더더욱 커진다. 과연 죽고 나서 내 영혼이 있다고 할 때, 그 영혼을 ‘나’라고 할 수 있을까? 한계가 있는 육체를 벗어난 인간의 영혼은 지금 내 모습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앞부분을 성경으로 시작했지만 사실 이 책은 인간의 인식 또는 마음이 육체 안에서만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살아있는 느낌
우리 몸은 내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생존을 위해 필요한 필수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를 대변하는 것이 인간이 가진 느낌, 기분 등이다. 이러한 느낌, 기분 등이 감정으로 표출되는데, 감정은 이성 못지 않게 인간이 내리는 판단, 생각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인간의 행동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신체의 손상도 그 손상 받기 전의 사람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책의 예로 등장하는 엘리엇이라는 환자는 뇌종양 수술 이후 알고는 있으나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는데 이전과는 달리 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흔히 인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이성적인 것 또는 정신적인 것이라고 하는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것이다. 즉 이성적 판단을 하기 위해서 우리 몸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을 우리 몸이 대뇌피질에 아웃 소싱한 셈이다.
데카르트의 오류
저자가 말하는 데카르트의 오류는 이성과 감정을 분리해서 생각했다는 점이다. 감정은 진화과정에서 체득한 어떤 판단이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인간이 생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위험하다는 느낌은 자신도 모르는 어떤 근거에서 비롯했을 수도 있고 혹은 아무런 근거가 없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위험을 느끼는 사람은 그 상황을 조심하게 된다. 즉 감정 또한 이성 못지 않게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참모인 것이다. 이 감정의 근거가 되는 것이 신체 각 부분에서 전달하는 각종 정보이다. 특히 감정의 변화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력이 무척이나 큰데 세분화된 현대의학은 그에 대해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실직이나 이혼 같은 개인적인 불행이 질병으로 나타나는 것은 저자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의사들의 조언 중에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요…”라는 말이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다니는 것은 어쩌면 자기반성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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