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을 보내며

비유일까? 실제일까?

A Bank Clerk 2021. 2. 2. 05:49

비유일까? 실제일까?

최근 들어 성경을 보면서 내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의문이다. 마치 모든 것을 의심하다 보니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은 의심할 수 없어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제 1의 명제를 떠올렸던 데카르트처럼, 그 동안 내가 그냥 받아들였던 것들을 책상에 올려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본다. 개인적인 경험도 이런 자세에 영향을 주었다.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는 고린도전서의 말씀, 말씀대로 산다는 교회의 분위기에 순응하여 오랜시간 교회 근처에서 머물렀지만 결과적으로는 얻은 게 없었다.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는 말은 오히려 말씀의 뜻을 생각해보지 않고 피상적으로 흘려 듣는다는 말과 같은 말이었다. 말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몇 천년 전에 짧게 쓰여진 말씀을 복잡한 현재에 적용하려면 그 것이 쓰여진 맥락을 알고 끊임없는 해석이 필요하다. 이 간극을 자신의 해석없이 메우려면 역설적으로 말씀을 읽지 않거나 삶을 포기하고 말씀에 갇혀야 한다.

 

딜레마 

비유일까? 실제일까? 라는 질문에는 신앙인의 딜레마가 있다. 비유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진리와 가까워지는 느낌이 있지만 더 이상 신앙인은 아니게 된다. 실제라고 생각하는 순간, 믿음은 강해지지만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는 좀 다른 그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단박에 본론으로 들어가보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실제인가? 혹은 비유인가? 나는 교회생활의 대부분을 실제라고 말하는 교회에서 보냈는데, 대놓고 비유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은연중에 내비치는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난 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하지만 그 충격을 잠시 뒤로하고 비유로 생각해보면 생각해볼 포인트가 무척이나 많아진다. 그 죽음은 다른 사람들의 죽음과는 다른가? 부활했다고 하는데 혹 그 부활이 비유라면 그래도 그 죽음은 의미가 있는가? 이 의문이 들었고 스스로 대답을 해보면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실제라고 생각했을 때에는 믿어져? 혹은 안 믿어져? 라는 질문과 믿습니다. 혹은 글쎄요? 라는 대답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실제 내가 근 이십년동안 교회근처에서 했던 질문과 답이었다.

 

믿음은 바보가 아니다.

가리키는 손가락을 바라보는 것은 바보의 영역이다. 하지만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을 내가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리키는 손가락과 그 방향을 번갈아 보는 것이다. 양쪽을 번갈아 보다보면 언젠가는 그 방향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예수님도 비유로 말씀하셨고 율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셨다. 비유를 글자 그대로 읽고 믿는 것은 어쩌면 예수님이 통탄할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