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
타인을 통해서만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다.
‘두유 노우 싸이?’ 미국부무 브리핑에서 한국 기자가 했다는 질문이다. 대부분의 유머의 경우 질문에 짤막하게 붙이는 데 반해서 질문 자체가 유머라서 많이 회자되었다. 외국사람에게 전혀 관계없는 질문을 하는 이유는 아마도 외국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한국의 열등감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자신할 수 없으니 외국에서 좋아한다. 알고 있다 등으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싶다. 이에 대한 비판도 많지만 외국에서 인기있으면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으나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다. 타인의 시선은 경제적 문제와 더불어 남자가 집안일을 하고 육아휴직을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일 것이다.
심리적인 고립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고 난 뒤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심리적인 고립이다. 주변에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없다 보니 내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다. 나는 신기하게도 몇몇 남자 동기들이 육아휴직을 해서 가끔 애들 유치원을 보내고 난 뒤 점심에 회동을 할 때도 있지만 평소에는 만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재미있는 것은 엄마들끼리는 처음 만나더라도 엄마들끼리 이야기도 하는데 반해서 난 아빠들이 놀이터에 나와있더라도 한번도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 개인의 성향이기도하고 성인남성 둘이 만나기에는 놀이터가 낯선 장소이기 때문일 수 있다. 아무튼 일터(?)에서는 사람들을 사귀기 어려운 구조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아파트 단지에 있는 놀이터에 자주 가는데 갈 때 마다 만나는 엄마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살림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다른 일 준비하느라 잠시 쉬고 있다고 말하기가 덜 부끄럽다.
에세이가 할 수 있는 것
노승후의 ‘아빠 퇴사하고 육아해요’를 보니 좀 안심이 된다. 나와 비슷한 생활패턴을 가진 사람을 만나니 내가 완전히 혼자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나와 전혀 관계없지만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생각과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안도감이 많이 생기는 일이다. 앞서 말한 것 같이 누군가가 내 생활을 인정해준 느낌이랄까? 책은 무척이나 쉽게 읽힌다. 특별한 정보는 없지만 육아휴직을 했다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에세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는 책이다. 육아책을 보면서 왜 이렇게 정보가 빈약한 책들이 많을까 생각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보보다는 공감을 원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일이 부끄러워?
솔직히 집에서 집안일 하는 것이 부끄럽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추측할 수 있겠지만 굳이 말하고 싶지는 않다. 최근에 작은 일로 아내와 싸웠는데 나 자신이 집안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당당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집안일은 단순하고 누구나 할 수 있으며 비용을 줄일 수는 있을지언정 명시적인 수입이 없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집안일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깊이 들어갈 경우 그 깊이가 천차만별이다. 나 스스로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시도가 의미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