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일기

왜 퇴직하는가 D-252

A Bank Clerk 2023. 4. 23. 12:09

'퇴직일기'라는 진부한 제목으로 글을 써 보기로 했다. 올해 12월 31을 퇴직일자로 생각하고 지금까지의 직장생활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실제로 퇴직을 하게 될지 내년에 다시 12월 31일을 퇴직일자로 하고 다시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 미리 써보는 유언 같은 느낌이랄까? 

우선 나는 2007년에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23년 4월까지 직장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이다. 16년의 직장생활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있는(심지어 많은) 상태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16년이 지난 지금시점에서 퇴직에 관한 몇가지 질문을 스스로 하고 답해보려고 한다. 

  • 왜 그만 두는가?

결국 생계와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이다. 직장생활에는 여러가지 목적이 있을 것이다. 우선 생계에 대한 목적이 가장 크고 둘째로는 일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어떤 성취욕 같은 것이 있겠다.

  • 직장 이외에 생계에 대한 대책이 있는가?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지금 직장생활을 계속 하는 것이 생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현재 급여를 55세까지 지속한다는 가정하에 경제적으로는 부족한 것은 없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16년간 받아온 급여에 내 생활을 맞추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끊임없이 나와 내 가족의 욕구를 조절해야 겠지만 적어도 밥 굶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직장을 계속 다니는 것이 현 상황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 둘 수 있다고 목표를 둘 수 있는 것은 직장 이외의 수익이 생겼기 때문이다. 월에 작지만 비교적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익이 생겼고, 크기를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큰 수익 또는 손실 모델도 있다. 부호가 음수일 수 있다는게 문제이다. 

  • 직장을 다니며 얻는 어떤 보람이 있는가? 

보람이 전혀 없다. 현재 직장은 무한 순환보직으로 직업인이 아닌 직장인을 만드는 시스템이며 현재 하는 일이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나는 16년차 직장인이지만 사실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오직 이 조직에 대한 이해도만 깊은 상태이다. 하루 하는 일은 온전히 급여를 받기 위한 행동이며, 지금 하는 일도 너무나 하기 싫은 업무이다. 현재 그나마 내가 했던 일들은 업무 강도나 일의 적합성을 봤을 때 내가 하고 싶지 않거나 나와 맞지 않는 일이다. 더 문제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없다는 것이다.

결국 직장 이외의 수입이 생기고 나니 현재 안정적인 수입과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젊고 가정이 없다면 미래 가치를 크게 산정하여 당장 오늘이라도 던지고 나오겠지만, 나 이외에도 엮인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고민이 생긴다. 예상은 빗나가기 마련이지만 절대로 빗나가서는 안되는 상황이다.

글을 쓰다 보니 결국 나에 대한 가치를 얼마로 산출하느냐에 대한 질문이다. 그냥 가족을 생각하면 직장을 다니면서 현재 생긴 부수입원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 운이 좋으면 부수입원으로 수익성을 챙기면서 현재 직장생활에 대한 안정성을 둘다 가져갈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회사가 너무 다니기 싫다. 

결국 직장 동료들과 점심 단골 화제인 로또에 얼마가 당첨되면 그만둘 것인가? 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당첨금 계산 방법이 높은 등수의 당첨금은 당첨자끼리 나누니 회차별 차이는 있지만 1등은 30~20억 정도, 2등은 6천~5천만원 정도, 4등은 5만원, 5등은 5천원이다. 사람마다 가치가 달라서 이야기 하기 어렵지만 나는 로또 1등 당첨으로 20억이 손에 들어오면 당장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다. 잠시 주제에서 좀 벗어나자면 로또 1등 당첨되어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는 사실 벼락 맞기 전에는 직장생활을 계속하겠다는 근무의지를 표력한 것이라는 것을 아는가? 그러나 저러나 나는 이런 추세로 가면 5등에 당첨되어 5천원을 받아도 혹은 로또가 꽝이어도 직장을 그만둘 것 같다. 걱정된다. 사실 나보다는 내 아내가 더 걱정이 많다.  아직도 나는 무엇이 이루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것인가? 아님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