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앉기를 주저하지 않음
이제는 벤치에서
2019년이 가고 2020년이 왔다. 아내는 인스타에 올릴 목적으로 2019년 우리가족 10대 사건을 뽑았다. 아내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맡아서 잘 운영하다가 셋째를 임신해서 출산휴가에 들어섰다. 첫째는 수영을 배웠고, 두발자전거를 타기 시작했고 스노우보드를 처음 배웠다. 그런데 나는 막상 2019년에 했던 일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쥐어짜서 생각한 것이 파이썬 배운것, 선물거래 시작한 것 정도이다. 사실 특별한 일이 없었다. 아내는 '그래도 뭐 특별한 거 없어?' 라고 물었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첫째가 처음 시작한 모든 행동의 장소에 내가 있었다. 아직은 아이 옆에 내가 함께 있어야 했고, 첫째의 성취는 내 지분이 상당부분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가 아닌 벤치에 앉아있는 코치가 된 셈이다.
포기
아이들이 많이보는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엄마'라는 우리 엄마라는 책에서는 엄마가 사장님, 우주비행사 등이 될 수 있었음에도 우리 엄마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사실 사장님, 우주비행사도 엄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아무튼 엄마가 출산과 육아를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한 것을 은연 중에 말한 것 같다. 성별은 다르지만 나도 앤서니 브라운에 나오는 엄마와 같은 입장이라고 본다.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사장님 혹은 임원은 못되었더라도, 팀장님, 부장님은 되었을 수 있다. 나는 아이를 위해서 팀장님, 부장님이 되는 것을 포기했다. '포기'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되기 싫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팀장, 부장을 포기한 것이 아니고 그저 아이들과의 생활을 선택한 것이다. 팀장, 부장이 되는 것이 내게 큰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대부분의 여성이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기 때문에, 어떤 조직이나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0년 정도 회사생활을 해본 결과, 이 또한 개인적인 차이가 크긴 하지만, 나는 직장생활에서 나름 자리를 잡았지만 그 상황이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입사 초기부터 조직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치 입학때는 당연히 서울대를 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차 목표를 하향조정하는 고등학생처럼, 나 또한 조직에 대한 기대와 목표치가 낮아진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시각이고 속해있는 조직과 주변 환경에 따라서 개인차가 클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임원, 부장이 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을 생각해보면, 상당수의 직장인들이 가질 수 있는 생각임에는 틀림이 없다. 회사를 다니는 시간동안, 육아못지 않게 내 시간과 노력을 탐욕스럽게 요구하는 조직에 적응하려 노력했지만 생각처럼 행복하거나 주도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최근 개봉한 영화인 '82년생 김지영'을 보면, 육아로 인한 고립감은 공감이 되었지만 주인공이 왜 그렇게 회사에 다시 가고 싶어하는지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돌아오는 저녁 시간은 사실 다른 사람을 만나기 어렵고, 소위 여성 주부들은 그들끼리의 긴밀한 네트워크가 있지만 남성인 나는 그 여성 네트워크에 끼어들기도 어렵고 낮에 시간이 되는 다른 남성을 찾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다른 성인을 만나기 위한 방법으로 회사는 좋은 선택지는 아니다. 이해관계가 얽히는 순간 편한 상대가 아니기고 피상적인 관계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주저앉기를 주저하지 않음
인생의 가치는 지속적으로 바뀐다. 아이를 키우면서 점차 자신의 성취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주저 앉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주저앉기를 주저하지 않는 부모의 마음을 나는 아이들로부터 배웠다. 임원이 될 수 있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한 것인지 혹은 애초에 임원이 될 수 없어서 아이들과 함께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제는 내가 포기한 가치가 전혀 아쉽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임원이 될 수 없어서 아이들과 함께 하기를 선택했겠지만, 나는 제한된 선택지에서 가장 좋은 결정을 했다고 본다. 현실도피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싶지도 않다. 지난 한 해, 나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다. 어감의 차이가 있으니 '아무것도 성취하지 "않았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내세울게 없는 것 때문에 조급하지도 않다. 아이들은 소소하게 자랐으며, 손에 쥔 것은 없지만 지난 한 해 충분히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