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에 대해서
마치 육아에 대해서 내가 무지했던 것처럼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나는 철저하게 무지했다. 결혼하기 전에는 연예의 감정이 그대로 유지되는 상태인 줄 알았다. 혹은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끈끈한 관계가 지속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는 부부는 육아를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공동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위와 같은 설명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지만 어느 하나로 설명할 수 없을만큼 부부관계는 복잡하게 뒤엉켜있다.
부부는 애정관계인가?
아이들이 어느정도 성장하면 2차 성징이 나타나고 몸은 2세를 만들 준비를 한다. 이 준비과정에서 이전에는 없었던 성욕이 생겨나고 이 욕구에 기반한 감정이 애정이다. 소설의 단골 소재로 쓰일만큼 죽음도 불사할 수 있는 힘이 애정이다. 애정을 ‘욕구에 기반한 감정’이라고 굉장히 건조하게 썼지만 이 욕구에는 여러가지 취향과 선택이 들어가 있다. 내 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내 얼굴도 있지만 아내의 얼굴도 들어가 있는데, 설령 아내가 꼴도 보기 싫을 때라도 아이의 얼굴에서 보이는 아내의 모습은 충분히 사랑스럽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배우자로서 선택을 했다면 평소 자신이 좋아했던 요소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너무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이런 감정은 영원하지 않다. 이 감정은 어느 순간 급격하게 줄어들고, 죽음까지 불사했던 상대는 치졸하게 주머니의 돈을 세고 행동 하나하나를 평가하기 시작한다. 소설의 소재로 결혼생활이 쓰이지 않는 것은 연예에 비해 극적인 가치가 무척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지속이 어려운 사랑이지만 처음의 강렬한 기억은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주요 축이다.
부부는 가족인가?
부부는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가족이라고 한다. 가족의 정의를 같이 생활하는 공동체로 한다면 당연히 부부는 가족이고, 무례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면 부부는 한계가 있는 가족이다.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서 따로 살기 시작하면 부부의 생활방식은 많은 차이가 나서 부딪히기 마련이다. 양가를 방문했을 때, 한 쪽 배우자가 불편한 것은 자신이 살았던 생활방식과 치아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차 시간이 지나면 부부는 자신들이 만든 삶의 패턴이 더 익숙해진다. 부부는 좀 더 가족과 비슷해 진다. 아마 우리의 부모도 이와 같은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가족은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에 서로 조언 또는 참견을 하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기분이 나쁘고 싸울 수는 있지만 부모라는 강한 관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관계가 깨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부부는 부모나 형제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더 밀접한 사이지만 언제든지 관계가 깨질 수 있는 사이이다. 가족간의 무례한 훈수가 보통 손윗사람과 손아랫사람 사이에 일어나서 기분은 나쁠지 언정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적은 반면, 부부는 그 동등한 지위 때문에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부부의 행동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이유이다.
부부는 경제공동체인가?
한참 부부싸움을 할 때, 아내에게 나는 우리부부 사이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고 이야기 했다. 엄중한 경고의 의미로 한 말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경고의 메시지가 아닌 실제 관계를 상당부분 설명해 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결혼 전에, 부모들이 상대의 조건을 따지는 것은 부부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결혼은 기본적으로 아이를 키우기 위한 사회적 장치이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데 굳이 법까지 필요하지 않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사회생활과 같이 분업이 필요하며 서로의 주문에 적절하게 ‘납품’할 수 있는 사업파트너가 필요하다. 결혼 전에 성실함, 신뢰성을 보는 것은 사랑으로 커버할 수 있는 기간과 정도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업파트너로서 상대를 보는 것은 어쩌면 결혼을 행복하게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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