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
얼마전 처남이 결혼하겠다는 계획을 아내에게 말했다가 그 계획없음에 조목조목 질타를 당한 적이 있다. 나도 결혼할 때 조건이 우선한다는데 100% 넘게 동감하지만 아내의 매서운 질타에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면서 일방적으로 당하는 처남의 모습에 연민이 느껴졌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입체적인 시각을 가진 내 나이 때의 시각으로 보면, 결혼을 앞둔 20대 후반~30대 초반 연령 특유의 데드라인 때문에 처남은 지금 여자친구와 결혼이냐 결별이냐를 결정해야 할 시간이 왔고, 그 안 중 하나로 결혼이라는 필연적인 결론에 이른 것이다. 그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아직 전혀 검토되지 않았기 때문에 처남은 결혼생활 8년차(비록 매순간이 위태롭긴 했지만)에 접어든 베테랑인 아내의 능숙하고 치명적인 공격에 가드도 올리지 못한 채 난타당했을 것이다. 토론 결과로는 아내의 완승이었지만 과연 처남은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엔 이건 No-game일 확률이 높다. 관전평을 덧붙이자면, ‘내 아내는 꼰대였다.’
내가 대학 새내기 때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대학교에서 하는 고등학교 동문회에 참석했는데, 어떤 형이 내게 새내기가 하는 생각을 알고 싶다면서 내게 요즘 관심있는 것을 물었다. 나는 별 생각없이 영화 제작에 관심이 있다고 하니까, 그 형은 나를 무척 한심하게 보면서 말했다.
“네가 영화에 정말 관심이 있다면 지금부터 충무로 가서 바닥부터 제작을 배워야 해.”
이건 뭐, 놀아달래서 놀아줬더니 죽자고 달려드는 느낌이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개인적으로 꼰대를 정의해 보자면 현실에 맞지 않는 ‘맞는 말’을 하는 사람 정도가 된다. 10년전쯤에는 현실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을 꼰대로 정의했을 텐데, 10년이 지나고 나니 ‘맞는 말’이라는 단어가 추가되었다. 꼰대들이 하는 말은 듣기 싫고 실현 가능성도 없지만 지금 보니 하나같이 맞는 말이다. 마치 의사들이 하는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요’ 라는 말과 비슷하게 실현할 수도 없지만 또 흠잡을 데도 없다. 어쩌면 꼰대의 말이 이제는 맞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은 내가 늙었음의 인증일 것이다.
자리를 좀 보고 누워야지
꼰대가 하는 말은 하나같이 맞는 말인데 뭐가 문제가 된다는 것일까? 꼰대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듣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하는 말이다. 또한 예전에는 맞았으나 앞으로 맞을지 의문시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에게 전혀 힘이 없기도 하다. 만약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고등학생인 나를 만나 꼭 서울대를 가라는 충심어린 말을 한다면 나는 연고대를 포기하고 서울대를 갈 수 있을까? 내 기억에는 나는 내게 있는 자원을 총동원하여 죽도록 공부했지만 위에 쓴 대학을 갈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열심히 하라고? 또한 위 대학에 진학하면 많은 부분 보장되었던 것들이 앞으로도 유지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말을 하는 것은 듣게 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말 자체를 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불쾌한 오지랖
세대별로 공유하는 고민이 있다. 회사에서 본다면 부장의 고민은 상당부분 퇴사 이후에 무엇을 할까? 하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차장 입장에서는 길게 보지 못하고 자기 밥그릇만 신경쓰는 부장들이 오히려 결정권을 가진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차장들이 뒤에서 하는 이야기를 부장 앞에서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꼰대가 하는 말과 무척이나 비슷할 것이다. 듣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일이 아닌 사안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 이것이 꼰대를 만드는 말이다. 기본적으로는 꼰대에는 나이가 없다.
뱉어낼 수 있는 힘
꼰대의 주요 특징은 듣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은 맞는 말을 그 사람 앞에서 하는 것이다. 꼰대의 말은 일단 듣는 사람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말하는 정보 자체는 타당성은 있으나 최신으로 업데이트 되어있지 않으며, 듣는 사람보다 지위적으로 우위에 있어서 실제로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은 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안되는 하나마나한 이야기이다. 그런 이야기를 상대의 거부감을 알고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보통 지위나 나이 같은 것이다. 보통 나이많은 사람이 꼰대라는 공식이 여기서 성립한다.
무능의 척도
내 나이는 이제 삼십대 후반으로 사회경험 10년정도를 가진 나이가 되었다. 조직에 있었다면 소위 ‘중간역할’을 하게 되는 나이이다. 의미가 좀 애매하긴 하지만 중간역할은 조직의 목표와 전체적인 방향을 알면서도 현장의 어려움이나 한계를 반영하여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때부터는 전체적인 정책결정에 조금씩 내 의견이 반영되기 시작하기 때문에 점차 힘이 생긴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힘이 생겨나는 만큼 ‘꼰대’가 되기도 한다. 한 자리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꼰대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은 무척이나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변화하는 새로운 추세와 새로운 사람들고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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