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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해 본 생각

나나 잘 하세요

친구들고 사이좋게 지내

큰 딸은 이제 8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이 시기 아이들은 매년 새로운 것도 사실이지만, 초등학교 입학은 아무래도 환경이 크게 바뀌어 신경이 쓰인다. 특히 학교에서 새 친구들을 잘 사귀는지 가장 많이 신경이 쓰인다. 작년 유치원에서 받은 상담 중,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적극적인 모습이 부족하다는 내용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물론 6살까지 어린이집에 다니다가 7살에 유치원에 합류했기 때문에 이미 친한 친구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큰 딸이 친구에게 같이 놀래?’라고 툭 던져 본다거나, 혹은 말없이 다른 친구가 하고 있는 놀이에 끼어드는 넉살을 상상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큰 딸에게 잔소리를 한다.

친구에게 네가 먼저 인사하고 같이 놀자고 해.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낯가림

뇌를 거치지 않고 혀에서부터 시작되는 잔소리를 하고 있던 어느 날, 내 말이 귀를 통해 뇌리에 꽂혔다. ‘세이헬로스몰톡을 통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라는 시중에서 흔히 접할 수 있고 맞는 말이지만 지금 내게도 똑같이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낯을 가리는 편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얼마전 남자 휴직자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처음보는 사람들에게 자기소개 말고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루이틀 그런 것도 아닌데, 거기서 말을 많이 못했던 것이 또 마음에 걸렸다. 난 낯을 가리면서도 내가 주도하지 못하는 상황이 싫은 것이다. 혹은 주도하지 못하는 상황이 싫어서 낯을 가린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인과관계가 어떻게 되었든 난 처음보는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던지고 받으며 에너지가 충전되는 타입은 아닌 것이다.

나의 문제

큰 딸이 가지고 있을 수 있는 문제는 나 자신도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난제이다. 삼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기회와 시도가 있었지만 난 아직도 처음보는 사람과 대화할 때 편안하지 않다. 딸에게 했던 잔소리를 내게도 해 본다. 인사 먼저하고 아무 이야기나 먼저해보라고곧 이어 삼십년 넘은 데이터에 기반한 반론이 나온다. 난 눈 마주치기 전에 허공에다 인사하는게 너무 싫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는 이야기를 물어보면 상대방이 질문 속에 영혼없음을 먼저 눈치챈다는 것이다. 내가 그 모습을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은 이렇게 어렵다.

내 딸의 답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 딸은 나와 내 아내를 많이 닮았다. 어떤 부분은 성격이나 행동 패턴도 많이 닮은 것 같다. 마치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과거로 돌아가 예전의 자신과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는 것처럼, 과거 내가 겪었을 문제를 내 아이들도 똑같이 겪을 것이다. 문제 중에 어떤 것은 해결했고, 어떤 것은 해결을 미룬 채, 문제가 사라질 때까지 버텼으며, 어떤 것은 지금까지도 해결을 못했다. 나를 돌아보면 그렇게 낯을 가리면서도 그래도 겨우 결혼도 했고,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친한 친구들도 있다. 낯을 가리는 성향이 맘에 들지는 않았음에도 결국 바꾸진 못했다. 하지만 첫 눈에 사람을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조금 시간을 두고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는 합의점은 찾았다. 내가 영혼없이 딸에게 조언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합의 때문이었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큰 딸은 자신의 이 성향에 대해서 어떤 결론을 내릴까? 몇 년 후면 오히려 나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