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 매력
양양의 매력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꼽은 양양의 매력은 절벽과 푸른 바다를 마음껏 볼 수 있는 동해라는 점, 양양고속도로의 개통으로 2시간이면 서울에서 양양까지 도착할 수 있다는 점, 상대적으로 미세먼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이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애초에 같이 가기로 한 사람들이 모두 사정상 빠지면서 이번 여행은 거의 10년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이 되었다. 차량도 집에서 가져가지 못하고 현지에서 렌트하였는데 고속버스를 타고 양양여행을 떠나니 예전 10년전 고속버스 만으로 떠났던 여행이 생각나기도 했다. 짐을 들고 집에서 강변역까지 가는 데에는 좀 힘들고 한 시간 정도 걸렸지만 강변역에서 양양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니 가는 길에 인터넷 검색도 할 수 있고 잠도 잘 수 있어서 좋았다. 양양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이십분정도 기다렸던 경험은 불편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참신하고 새로웠다.
양양의 주요 관광지
양양의 주요관광지로는 낙산사, 하조대와 같은 주요 해변과 오색약수로 대표되는 설악산 진입로 등을 꼽을 수 있다. 양양시에서 만든 관광지도에는 양양 8경으로 양양시내 옆을 흐르는 남대천과 설악산 대청봉, 한계령 길, 오색주전골, 하조대, 죽도정, 남애항, 낙산사 의상대를 꼽고 있다. 이번 여행은 그 지도를 기반으로 진행했다. 3월 초는 국립공원에서 산불방지를 위해서 설악산 등산로의 상당부분을 통제하고 있으나, 주전골은 탐방할 수 있었다. 관동8경의 8을 맞추기 위한 양양 8경은 설악산과 하조대, 낙산사를 제외하고는 사실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내 경우에는 여행초반 차량이동이 여의치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양양시외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여행할 수 밖에는 없었지만 블로그를 뒤져보면 대부분 속초-양양 여행을 하지 양양만 둘러보는 경우는 많지 않아 보인다.
일정
여행은 2박3일을 일정으로 했다. 숙소는 낙산비치호텔이었고 이동은 양양시내의 시간단위 렌터카를 이용했다. 첫째 날은 양양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설악산 오색약수와 주전골을 탐방했고, 둘째 날은 숙소와 가까웠던 낙산사를 둘러본 뒤 양양 시내로 가서 남대천, 양양시내 5일장을 둘러보았다. 오후에는 해변을 돌면서 하조대, 죽도정, 남애항을 다녀왔다. 마지막날은 진전사지 3층석탑을 보고 서울로 돌아왔다.
인상적인 낙산사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낙산사에서의 광경이다. 거기서 신도들이 신용카드로 시주를 결제하고 ‘낙산사’라고 쓰여져 있는 박스에서 꺼낸 초를 사서 불을 붙이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동안 불교를 믿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 스님이 염불을 외는 일, 뒤에서 신도들이 절하는 행동은 단순한 요식행위요 절은 초와 시주, 기와 같은 다양한 상품을 갖추고 신도들의 돈을 받는 영업장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불당 안에 매달린 여러 사람들의 바램이 담긴 연등과 바깥의 초를 보니 그곳이 하나의 세계를 축소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빼곡히 적혀있는 소원 중에는 이해가 직접적으로 상충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동일하게 이 곳에 와서 서로 어쩌면 상충될 수 있는 소원을 적고 가는 모습을 생각해보니 소원 성취보다는 소원을 비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순수한가? 그 순수함 앞에서는 돈의 액수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해 보인다. 어떤 목적이 아닌 그냥 존재의 소중함을 낙산사에서 봤다.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 - 휴휴암
이번 여행에서 들렀던 절과 불교의 사상을 놓고 보면, 아이러니 하다. 당시에는 절 건물을 짓기 위해 최고의 기술자와 예술가들이 모였을 텐데, 열반에 이르기 위한 길을 알리기 위해 당대 최고의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이러니한 것이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르침이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괴로움을 더하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단지 불교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나마 홍보 수단 그 자체가 아름답다면 아이러니가 되지만, 그 수단이 조잡할 경우에는 가르침 자체가 의심되기도 한다. 절 특유의 입장료 시스템이나 절 입구에 있는 조잡하기 이를데없는 기념품 가게를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번 여행 중 방문했던 휴휴암에서는 그 조잡한 홍보수단의 진수를 본 것 같다. 우선 절이 위치한 토지소유권 관련해서 분쟁이 있는 모양이었는데, 주변 정황은 알지 못하지만 결론적으로는 휴휴암 측에서 다른 사람의 토지를 무단점유하고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 법원에서 난 것을 보면 휴휴암이 피해자이진 않은 것 같다. 서로 다투는 현수막 때문에 분위기 자체가 흐려진 상태인 데다가 휴휴암 내의 낙산사의 해수관음상을 조잡하게 카피한 듯한 거대 불상과 출처미상의 큰 종 등 여러 시설이 조잡하기 이를 데 없어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 중 최고는 해변 바위 진입로에서 방생을 위한 고기를 횟집 어항에 놓고 파는 것, 고기 먹이에 ‘돈을 내고 가져가세요.’ 라고 쓰인 글이었는데, 이 부분에서는 오히려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절은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를 너무나 당연한 듯이 풀어내서 재미가 있는 것 같다. 그 동안 내가 방문했던 절은 대부분 입장료가 있어서 비교적 그 괴리가 작았었는데 입장료 없이 유지해야 하는 휴휴암의 조잡한 상업성은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작은 괴리도 무척이나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것은 내 좁은 시각에서의 너무 이상적인 결벽증 아니었을까? 사는게 그런 것이다. 내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재단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양양시내
이번 여행의 시작과 끝은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던 양양시내였다. 첫날은 렌터카를 빌리고 반납하기 위해서 왔다갔다 했는데, 별다른 안내 없이도 손님들이 알아서 탑승하는 시스템이 신기했다. 그동안 여행을 가면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 맛집을 찾아다녔는데, 혼자 다니는 여행이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제한되기도 했고, 시간도 애매해서 주로 양양시내에 있는 음식점을 이용했다. 양양 시내의 음식점은 하나같이 저렴하고 맛도 좋았다. 양양시내에서는 날짜가 4, 9로 끝나는 날에 5일장이 열리는데, 예상보다 큰 규모가 인상깊었다. 마을 주민들이 길에서 인사하는 모습은 정겨웠다.
설악산 오색약수와 주전골
기암괴석이라는 단어를 직접 느낄 수 있는 설악산은 주요 봉우리는 양양군에 위치해 있지만 진입로는 속초에 더 많이 위치해 있긴 하다. 양양에서 진입할 수 있는 설악산의 주요 코스는 오색약수로 유명한 주전골이다. 난 오색약수를 처음 맛보았는데, 약수터의 전형적인 물이 졸졸 흐르는 형태를 기대했던 내게 명성에 걸맞지 않은 단촐한 오색약수의 외관은 좀 의외였다. 계곡물 옆에 설치된 오색약수의 경계석은 초라해 보였지만 맛은 인상적이었다. 녹물에 탄산이 섞여 있다고 표현하면 될까? 오색약수를 표현하는 안내문에는 너무 많은 양을 먹으면 안된다고 적혀 있었는데 정말 많이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주전골은 예전에 도적들이 위조엽전을 만들던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설악산의 한 봉우리를 오르는 코스는 아니지만 설악산 특유의 거대한 암석을 접할 수 있는 코스이다. 코스 마지막의 용소폭포는 설악산 폭포답게 날렵하고 시원시원하다.
절벽과 바다 – 하조대
동해의 바다는 모래사장과 시원한 수평선이 시원한 느낌을 준다. 하조대에서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동해의 뷰와 낙산사에서 보는 동해는 비슷하지만 또 나름 다른 매력이 있다. 죽도정, 남애항에서도 그런 높은 뷰를 위해 전망대를 만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부족한 감이 있었다. 남애항은 등대까지 걷는 길에서 항구를 바라보는 뷰가 새롭긴 했다.
진전사지 3층석탑
마지막날 국보 제 133호인 진전사지 3층석탑을 찾아갔는데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에 비해서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가진 곳이었다. 양양의 진전사는 조계종의 종조인 도의선사가 당에서 유학한 뒤 돌아와 40년간 수도하였다는 곳이다. 당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으나 당시 신라에는 경전을 중시하는 교종이 주류를 이뤄서 도의선사의 선종은 뜻을 펴기 어려웠다. 이후 도의선사는 진전사에서 은거하게 된다.
진전사지 3층석탑은 통일 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탑으로 1층에 새겨진 불상과 위층기단의 8부신중이 있고 마모가 심하긴 하지만 아래층기단에도 천인상이 새겨져 있다. 진전사지 3층 석탑 주변은 절터만 남아있는데 오히려 3층석탑을 집중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3층석탑의 지붕돌은 처마끝이 들어올려져 있어 발랄한 느낌이 들고 주변 산과 잘 어우러진다. 진전사지 3층석탑 인근에는 경사가 급해서 좀 거친 탐방로가 있고 이 탐방로는 새로 지어진 단촐한 진전사로 이어진다. 진전사는 절 규모가 생각보다 작은 편이나 저수지 앞에 높은 지역에 지어져 있어 산세와 잘 어울린다. 진전사 옆에는 도의선사의 부도로 추정되는 진전사지 부도가 있다.
산, 바다, 불교
양양 여행을 정리하면 산, 바다, 불교 정도가 될 것이다. 특히 불교 측면에서는 현재의 조계종이 시작된 곳이어서 더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낙산사보다는 진전사지 석탑과 절터가 인상깊었다. 주요 관광지가 아닌 진전사지에 방문해서 조용히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혼자 여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이번 여행을 통해 불교에 대해서 좀 관심이 생겼는데 그동안 어쩌면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던 것들을 궁금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마도 이번 여행에서 내 일상과 완전하게 분리되었기 때문에 평소와는 달리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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