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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일까? 실제일까? 비유일까? 실제일까? 최근 들어 성경을 보면서 내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의문이다. 마치 모든 것을 의심하다 보니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은 의심할 수 없어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제 1의 명제를 떠올렸던 데카르트처럼, 그 동안 내가 그냥 받아들였던 것들을 책상에 올려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본다. 개인적인 경험도 이런 자세에 영향을 주었다.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는 고린도전서의 말씀, 말씀대로 산다는 교회의 분위기에 순응하여 오랜시간 교회 근처에서 머물렀지만 결과적으로는 얻은 게 없었다.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는 말은 오히려 말씀의 뜻을 생각해보지 않고 피상적으로 흘려 듣는다는 말과 같은 말이었다. 말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몇 천년 전에 짧게 쓰여진 ..
세상은 창조된 것일까? 창세기 1장 1절 주말 농장을 하면서 느낀 하나님 딸과 주말농장을 하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밭을 가꾸는 일은 재미있다. 자주 갈 때는 매주 가기도 하고 덥고 흥미가 떨어질 때는 한달에 한번 갈까말까 할 정도로 뜸하기도 하다. 작년 더웠던 여름에 뜸했던 주말농장을 더위가 한 풀 꺾인 가을에 갔더니 잡초로 밭이 뒤덮여 있었다. 농장을 시작할 때, 꾸준하지 못할 것을 알고 밭에 비닐로 멀칭을 했는데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뿌리를 내리는 잡초의 능력을 보고 정말 놀랐다. 밭이 잡초로 초토화된 이후로는 흥미가 급격히 떨어져서 잘 안 가다가 올해 봄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다시 방문을 했다. 지난 여름에 위세가 대단했던 잡초는 다 말라서 죽어있었다. 잡초에 벌레에 온갖 생명체로 그득했던 밭 전체가 언제 그랬냐는 듯 ..
어린 아이와 같다는 것(막10장 13절)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성경 중에 그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는 몇몇 구절이 있는데, 내 경우에는 마가복음 10장 13절에서 16절까지 나오는 예수님께로 오는 어린아이들에 대한 부분이다. 이 구절에서는 예수님이 좋아서 다가오는 어린아이들을 제자들이 막자 예수님이 제자들을 꾸짖으며 하늘나라가 이런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14절에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든다’ 라는 또하나의 애매한 구절이 있을뿐 이런 어린아이들이 도대체 어떤 아이들인지는 명확하게 나와있지 않다. 이 구절은 어린이 날이면 흔히 언급되는데 내 기억에 남지 않는 것 보면 설교에서도 명확하게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른스럽다는 것 어린아이와 같다는 명확하지 않은 개념을 풀기위해서 반대로 어른스러운 것은 무엇일까?를 ..
어떤 일에 목숨을 걸 것인가? (마태복음 12장 12절) 악마는 디테일에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흘려야 할 피가 필요하다면 죄인을 대신하기 위해 희생의 제물 필요하시다면 내 생명 제단위에 드리니 주 영광 위해 사용하소서 생명이 또 다른 생명 낳고 주님 볼 수 있다면 나의 삶과 죽음도 아낌없이 드리리 '밀알'이라는 찬양이다. 교회에서 많이 부르는 찬양인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 찬양을 따라부르기가 부담스럽다. 이 찬양은 세상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모티브로 만든 찬양이기 때문에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막상 가사를 하나하나 곱씹어 보면 내가 죽겠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단지 죽음이 두려워서 이 찬양을 부르기 부담스럽다는 거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과연 어떤 일에 죽음까지 불사하겠는가를 생각해보면,..
하나님과 연결된다는 것 하나님과의 연결 하나님과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은지 참으로 오래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하나님의 인격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게 된 것이 사실이다. 교회에서 듣는 설교로는 내 목마름이 해결되지 않았고 노력해서 찾아본 책들에는 하나같이 내가 생각해 온 인격을 가진 하나님이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만 써 있었다. 민원 상담해주는 하나님? 우선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고 내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에 대해서 큰 의구심이 있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때, 이를 운영하는 규칙이 있는데 내 기도가 끼어들어서 그것을 바꾼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민원을 해결해주는 것은 내가 믿는 바로는 하나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온갖 결정을 기도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아마도 전래신앙이 만들어낸 모습일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로 많..
그리스도의 죽음 죽음과 부활의 의미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었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이 유독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부활을 했다는 기적 때문일 것이다. 현대과학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라보면 사실 그렇게 믿음직 스럽진 않지만, 그 진위를 따지기 전에 과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인정한다는 것이 실제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백일기도 하듯 교회를 다니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사실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얼마나 굳게 믿느냐는 의미보다 그리스도의 삶 자체를 인정하고 따른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단순히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어 구원받는다는 것은 백일기도를 드려 어떤 일을 이룬다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현대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해당 문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의미_롬7장 교회는 무엇을 믿는 것인가? 교회는 무엇을 믿고 가르치는 곳일까? 단순하게는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과 죄에서 인간을 구원한 예수님을 믿는 종교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죄에서 인간을 구원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말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나는 죄를 용서받았고 앞으로도 용서받는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중요한 개념을 너무 단순화시킨 것 같았다. 단순한게 싫어서 좀 더 깊게 들어가보면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결론이 나와 버렸다. 로마서 7장~8장에서는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죄라는 측면에서 하고 있다.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로마서 7장은 율법과 죄의 측면..
죄악과 구별_탕자의 비유_눅 15장 본문 : 누가 15장 25~32절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