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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해 본 생각

나는 아이들에게 가족일까?

나는 아이들에게 가족일까?

 

플래그쉽 카메라

첫째 아이를 낳고 나는 흔히 중급기라고 부르는 DSLR카메라를 플래그쉽으로 바꿨다. 또한 바디를 바꾸면서 렌즈도 그에 걸맞는 것으로 바꾸었다. 플래그쉽과 기본 렌즈의 워낙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바디는 이미 퇴역한 2세대 이전 것으로 바꾸었고 가격차이는 얼마 안나지만 렌즈도 중고로 샀다. 중고바디를 구매하기 전에 사진을 얼마나 찍었는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돌려보면 이 카메라는 45만컷을 찍었다고 한다. 아마 직업적으로 사진을 찍었던 사람이 실컷 이용하고 난 카메라로 소모품인 셔터박스가 언제든지 고장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카메라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최근 나온 중급기가 이 플래그쉽 보다 더 성능이 좋다는 글도 많이 있다. 하지만 난 저렴하고 이 카메라를 너무나 사고 싶었으나 도저히 살 수 없었던 옛날을 추억할 수 있는 10년전 카메라가 더 좋다. 10년전 기술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때는 플래그쉽 카메라였기 때문에 찍으면 사진은 잘 나온다. 나에겐 별 차이 없는 하루이지만 아이에게는 한 번뿐인 순간이라는 핑계로 샀는데, 찍었던 사진을 다시 찾아보면 비용이 절대 아깝지 않다. 카메라를 바꾸고 나서 나는 매일 아이의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잊어버린 날도 있고, 찍었더라도 대부분 구도와 주제가 비슷하지만 매일 찍은 사진에는 아이의 성장과정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흔히 백일사진, 돌사진을 찍는데 백만원 가까이 들이는 경우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멋진 스튜디오 사진보다 보정하지 않은 생활사진이 좋다. 사진 속에는 예전에 살았던 전세집이 배경이고, 아이들의 표정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웃는 표정보다 무표정한 표정이나 어색한 표정이 더 소중할 때가 많다. 이렇게 말했지만 나도 스튜디오에서 찍는 사진을 다 찍었다. 많은 부분에서 내 아내는 나와 생각이 좀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사진 찍으려고 아이를 낳았다.’ 라는 말을 농담으로 할 정도로 아이 사진을 찍어준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남는 건 사진

얼마전 둘째 아이 어린이집 선생님이 둘째의 돌 사진과 당시 썼던 물건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예전 사진을 보고 얼마나 자랐는지 아이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라고 했다. 사진 이야기가 나오니 나는 선생님에게 플래그쉽의 색감을 보여드려야 겠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컴퓨터를 뒤졌는데 놀랍게도 사진이 거의 없었다. 돌아보니 둘째를 낳고는 난 바쁜 부서로 갔고 근 1년 반 동안 8시에 출근해서 밤11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주말 출근도 많았기 때문에 몸은 피곤했고 아이 사진을 찍어줄 체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집에 있는 시각은 아이가 나를 기다려 줄 수 없는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난 그렇게 가족에서 배제되었다. 돈을 벌어준다는 타이틀은 가지고 있었지만, 난 가족은 아니었다. 카메라를 바꾸면서 내세웠던 아이에게는 한 번 뿐인 어린 시절을 난 그렇게 회사에서 바쁘게 보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남는게 없다. 이래서 사진만이 남는다는 말이 있는 것일까?  


제 어릴적 생각 못하고

지금은 난 육아휴직 중이고 지금은 내 아내가 예전 내가 했던 생활을 하고 있다. 아내는 새벽 2시정도에 퇴근하고 오후 12시정도 출근한다. 아이와 같이 등원할 때가 많다는 것 제외하고 저녁에 아이와 놀아줄 시간이 없는 것은 예전 나와 마찬가지이다. 내가 육아휴직을 해서 와이프가 나 대신 희생하는 것일까? 혹은 자신의 커리어를 선택하느라 가족을 미뤄둔 것일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아무리 엄마라도 아이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지 않으면 가족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얼마전 어린이집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큰 딸이 엄마는 너무 바빠서 자신과 못 놀아준다.’ ‘아빠는 맛있는 음식을 해 주는데 엄마는 그렇지 않다는 등의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표현한다고 해서 선생님과 아내만 면담을 했고 이에 아내는 충격을 받고 큰 애와 외출을 했었다. 재미있는 것은 나는 그럴 줄 알았어. 그러길래 주말이라도 누워있지 말고 아이들과 좀 시간을 보내지...’ 라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절대적인 시간의 문제가 아닌 자신에게 안기는 둘째 때문에 첫째가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나 역시 그런 생활을 했음에도 현재 아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내가 안쓰러워서 가능하면 주말에 쉬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혼자서 얼마든지 쉬게 해 주지만 속으로는 탐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아내에 대한 내 안의 감정은 연민과 얄미움이 범벅되어 있지만 언뜻 드는 생각으로는 얄미움이 큰 것 같다. 우리나라의 직장인이 불쌍하다. 인생을 담보 잡혀서 가족에게 제외될 정도로 시간을 빼앗기지만 가족들은 사실 잘 이해못한다. 우리 집의 경우 한국사회의 남녀성역할이 완전히 뒤바뀌었기 때문에 아내가 첫째의 반응에 충격을 받은 것이지만 대부분의 아빠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제외되었다는 것을 자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긴 근로시간은 시대의 불행이고, 한국사회 저출산의 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