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으로 예쁜 아이와 객관적으로 예쁜 아이
개인적인 취향이 있다고 하지만 외모가 뛰어난 사람은 보통 눈에 띄게 마련이다. 첫째 딸을 키울 때는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다. 작은 딸은 그래도 같이 지나가면 주변으로부터 귀엽다는 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다. 어느날은 첫째 딸과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자신의 딸과 같이 놀고 있던 어떤 남자가 다짜고짜 ‘나중에는 다 괜찮아져요.’ 라는 위로를 건낸 적도 있다. 뭐가 괜찮다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문맥상 이해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옷을 그렇게 입히기도 했지만 첫째는 머리를 묶지 않으면 좀 남자아이 같아 보였다.
눈치없는 칭찬에서
오늘도 국수집에서 나오는데 할머니 사장님이 둘째 딸의 귀여움을 칭찬했다. 둘째는 칭찬을 듣고는 기분이 좋아 ‘다섯살 이예요.’ 라는 시키지도 않은 자기 소개를 했다. 둘째는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고 자기가 어떤 말을 하면 어른들이 더 좋아한다는 걸 예상하고 행동한다. 거기에 질세라 첫째도 자기는 여덟살이라고 사장님께 소개를 한다. 부모인 나는 첫째 둘째에 대한 칭찬을 비슷하게 배분해야 함을 알지만 생전 처음 보는 사장님에게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할머니 사장님은 첫째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둘째의 귀여움을 계속 칭찬한다. 이쯤되면 첫째의 기분이 더 나빠지기 전에 대강 상황을 마무리 해야한다. 하지만 그 사장님은 결국 눈치없음의 쐐기를 박는다. “아유, 둘째 참 예쁘고 똘똘하네, 언니에게 안 지겠네, 맞죠?”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낯가림
내 어린시절을 돌아보면 내 외모는 평균이거나 혹은 그 이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때 주목을 받은 경우가 없다. 흔히 사람들이 하는 인사를 잘하라는 이야기도 내가 하면 허공에 날리는 인사가 많았다. 내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인사가 허공에 사라질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난 눈이 상대와 마주치기 전에는 인사를 잘 안한다. 상대가 아무런 반응도 안하는데 굳이 인사를 허공에 하는 것이 사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나도 신입사원이 오면 상대에게 인사를 먼저 하라고 팁을 준다. 인사를 잘 하는게 사람을 사귀는데 더 좋음은 내가 잘 안다. 근데 잘 안되는데 어떡하란 말인가? 허공에 날려 내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감안해서 난 허공에 인사를 날리는 것을 포기했다. 일반적으로는 인사를 먼저하는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유리한 행동이지만 솔직히 인사를 잘 하는 것이 왕도는 아니다. 어떤 친구는 먼저 인사를 건내오면 기분이 좋은데, 어떤 친구는 너무 인위적인 것 같고 시키는 대로 하는 로봇 같다. 그 친구 잘못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 로봇 같은 친구도 나와 같은 결론을 내리겠지.
동병상련
큰 딸의 모습을 보면 가끔 내가 너무나도 아쉬웠던 부분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내가 가장 아쉬웠던 것은 사람을 만났을 때, 낯을 가리는 것이다. 친한 사람한테는 그렇게 잘 되는 농담이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잘 안 된다. 어느 순간부터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 내 방식이 그 사람에게 통할지를 나름 재는 것이다.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는 시도하지만 없어보이는 사람에게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내가 살면서 나름 검증한 삶의 방식이다. 반바지와 샌들이 누군가에게는 아저씨 인증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패션아이템이 되는 것처럼 둘째의 넉살 좋은 방식이 내게는 맞지 않는다. 이쪽에서 넉살좋게 들어가면 저쪽에서 넉살좋게 받아줘야 하는데, 내 경험에는 상대가 정색했던 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넉살 좋게 살갑게 해볼 걸 하는 아쉬움은 있다. 첫째에게 느끼는 안타까움이 그런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눈치없는 외모지상주의자 국수집 사장님의 칭찬이 첫째를 생각하면 좀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런 불리한 상황에서 자기가 여덟살이라고 같이 말하는 것은 첫째는 나보다는 나은 것 같다. 그래도 뭔가 상황을 역전해 보려는 시도는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첫째야 지금처럼만 하면 돼. 나중에 너만의 방법을 찾으면 아빠한테도 좀 말해줘. 아빠는 사십년을 해도 잘 모르겠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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