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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해 본 생각

부모와 사축, 그 사이에서의 고민

부모와 사축, 그 사이에서의 고민

 

사축

육아휴직을 한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현재는 개인적으로 아르바이트 삼아 하는 일이 있고, 집안 일을 도맡아서 한다. 아내는 회사 일이 무척 바빠져서 아침에 아이들 등원을 일부 돕고 있는 것 이외에는 나와 아이들과 있을 시간이 없다. 과거 내가 회사에서 14-16시간씩 일하던 패턴을 동일하게 반복하는 셈이다. 회사를 다닐 때 아내에게 섭섭했던 점은 내가 이렇게 회사에서 힘든데 왜 이해를 못해주지?’ 라는 생각이었다. 14시간씩 일을 하면 사축(社畜)’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으로 느껴질 만큼 개인적인 시간이 전혀 없다. 회사 다닐 당시에는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도 했었다.

 

희생? 그건 니 생각이고

하지만 지금 나는 내 아내가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내 시각에서 아내의 사회활동은 가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좋아해서 하는 일인 것이다. 흔히 많은 아버지들이 활발한 사회생활로 가정에서 사라진 것처럼 내 아내도 그냥 아이들과 가정에서 없는 사람이 되었다. 아마 한국사회에서 많은 부분 여성의 시각이 지금 나와 비슷할 것이다. 1년전 내가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을 때도 아내는 지금의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1년이 지나서야 아내는 내 입장을, 나는 아내 입장을 공감하고 있지만, 지금 각자 위치에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같은 시간이 아니라면 공감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노동문제

최근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뜨겁지만 우리 집의 문제는 페미니즘의 문제가 아닌 노동문제라고 본다. 14시간씩 일하면서 가정에서 좀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압박을 받는 것이 옳은가? 왜 어떤 집의 아이들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회사에 빼앗겨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한 가정에서 답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가정은 남자가 직장을 쉬고 집에서 놀면서아이들을 돌보는 아직까지는 흔히 볼 수 없는 극단의 선택을 했음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물론 부모 중 한 명이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면 상당히 많은 문제가 해결되긴 한다.) 1년 전의 나로 돌아가보면 아내의 상황은 좀 안타깝다. 아무리 회사에서 보상을 잘 해줘도 한 사람이 14시간동안 일하는 상태에 걸맞는 대우를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내 경험에 한정된 일이지만 나중에 독자적으로 사업을 하는 개인적 자산으로 남지 않는다면 초과근무는 개인적 손실일 뿐이다.

 

컴백홈

아내는 억울할 수도 있다. 아내가 번 돈은 생활비로 고스란히 쓰인다. 아내는 바빠서 돈 쓸 시간도 없다. 내가 번 돈을 자기가 못 쓰는데 그것은 희생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돈 보내주는 사람보다는 같이 생활하는 사람이 가족이다. 좀 냉정하지만 14시간씩 일하면서 밖에 있는 사람은 경제공동체라고는 할 수 있지만 가족은 아니다. 1년 전의 내가 그랬고 지금은 아내가 그렇다. 최근 주 52시간 근로시대가 열렸다. 누군가는 반론으로 경제논리를 제기하지만, 초과근무를 밥먹듯 하는 사람에게는 돈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 실제로 52시간을 일하게 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지만 명목상으로 한계를 지정해주는 것은 맞다고 본다. 언제 우리는 정말 한 주에 52시간을 일하게 되며 가족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