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온 사람_타임머신과 육아
그 여자랑 결혼하지 마?
어린 시절 ‘백투더퓨쳐’ 같은 시간여행 이야기를 너무나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미래보다는 과거로 가는 것을 더 재미있어 했는데, 과거 사건에 간섭하면 그때마다 현재가 바뀌는 설정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타임머신을 개발할 능력은 안 되지만 아이와 대화하다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를 스쳐갔던 일들은 내 아이들도 비슷하게 겪게 될 것이다. 만약 나는 과거로 돌아가면 나에게 무슨 말이 가장 해주고 싶을까? 혹시 ‘그 여자랑 결혼 하지마!’ 일까?
이제 시작이다.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좋았던 기억도 있지만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경쟁했고 나름 치열했던 것 같다. 직장 부서 안의 위계질서가 있는 30명 사이에서 지지고 볶고 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지금으로 치면 동기 40명과 함께 하는 학창시절은 어찌 보면 더 어려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최근 유치원에 다니는 7살 큰 딸이 친구 때문에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말을 자주해서 몇 차례 선생님과 면담도 하고, 한 일주일 정도 집에서 쉬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었다. 가기 싫은 이유는 놀이를 할 때 자기 마음대로 하는 친구 때문인데, 딸의 말에 따르면 싫다는 표현을 해도 소용이 없고 다른 친구랑 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이해가 안 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속이 상했다. 자기 멋대로 하는 친구라면 혼자 놀도록 내버려 두면 될 텐데, 같은 7살인 그 친구에게는 도대체 어떤 힘이 있어서 우리 딸은 그 친구와 놀아야 했을까? 사실 정답은 내가 이미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집어낼 수는 없지만 우리 딸이 그 아이보다 약한 것이다. 과거 내 눈도 그랬을 것이지만 아이들은 개체 간의 서열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때로는 완력으로 때로는 학업으로 친구들과 군비경쟁을 했던 예전 기억이 떠오르면서, 우리 큰 딸은 이제 유치원 다니는데 벌써 시작한 것일까?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필로우 톡
덕분에 큰 딸과 자기 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친구들과 관계는 어떤지를 집중적으로 물어본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내 나름 최고의 방법들을 전수해 준다. 신나게 말을 하다 보니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실제로 타임머신을 타고 갔다고 하더라도 과거에 있는 나에게 영향을 끼치려면 이렇게 말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영화와는 다르게 듣는 아이는 ‘내’가 아니고 성별도 다르고 그 전략은 이미 20년전에나 통했던 것이지만 7살인 우리 딸은 아직까지는 내 말을 잘 들어준다. 나도 마치 타임머신을 개발해서 정말 어렵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것 마냥, 사육신의 마지막 충언처럼 피를 토하듯 아이에게 말한다. 과연 내 딸의 현재는 바뀔 것인가? 나도 다음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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