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을 보내며

그리스도의 죽음

죽음과 부활의 의미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었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이 유독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부활을 했다는 기적 때문일 것이다. 현대과학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라보면 사실 그렇게 믿음직 스럽진 않지만, 그 진위를 따지기 전에 과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인정한다는 것이 실제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백일기도 하듯 교회를 다니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사실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얼마나 굳게 믿느냐는 의미보다 그리스도의 삶 자체를 인정하고 따른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단순히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어 구원받는다는 것은 백일기도를 드려 어떤 일을 이룬다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현대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해당 문제에 맞서서 해결방법을 찾아야지 엉뚱한 앞마당에서 기도를 드릴 일은 아니다. 현재 기독교에서 벌어지는 온갖 문제들은 역설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없이 죽음과 부활에 대한 믿음에 대해 집착했기 때문이다. 본인이 무엇을 믿는지 모르기 때문에, 교회에서 이를 이용한 온갖 비리와 전횡이 가능해진다. 본인은 정성을 다해 백일기도를 드릴지 모르나, 누군가는 젯밥에 더 관심이 있을 것이다.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렇다면 예수님의 삶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된 부분은 무엇일까? 바로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다. 살아있으면서는 율법에 갇혀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를 그친 바리새인들을 미워하시고 다른 이에게 멸시받던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땅끝까지 전하라고 하는 메시지는 사랑이었지, 구약의 율법이 아니었다. 마지막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 성소의 휘장이 찢겨져 열리는 상징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 가는 길이 열렸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의 죽음을 믿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는다는 의미이다. 자신 주변에 있는 사람은 사랑하면서도 외부 사람에게는 행했던 증오와 적대행위를 이제는 그만두라는 것이 예수님이 자기자신을 찢어가면서 전했던 메시지일 것이다.

교회 다니는 바리새인들

예수님은 믿음을 판별할 때, 그 열매를 기준으로 하셨다. 내 모습이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가? 혹은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을 나누면서 편가르기를 하고 있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나는 예수믿고 구원받았다는 확신에 파묻혀서 정작 이웃을 사랑하지는 못했던 바리새인의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인 것은 아닐지 다시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