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 15장 25~32절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타이거우즈의 섹스스캔들
골프황제 타이거우즈는 예전에 많은 여성들과 섹스스캔들에 휘말려 사람들의 빈축을 산 적이 있다. 관련된 여성들이 한 두명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터넷에서는 그과 연관된 여성들로 인기투표를 하는 일도 있었다. 나 역시 열명이 넘는 여성들의 사진을 보면서 타이거우즈도 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 과연 내가 타이거우즈 같은 위치라면 나는 그와 달랐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타이거우즈처럼 어떤 부문에서 경쟁자가 따라올 수 없는 엄청난 성과를 냈고 내가 가만히 있더라도 여성들이 내게 호감을 표현한다면 내가 거절할 수 있었을까? 솔직한 답은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다행인지 현실은 엄청난 노력을 하지 않으면 내게 넘어올 여자는 없으며, 내게 그렇게 노력할 열정도 남아있지 않아 내가 그런 조롱을 받을 가능성은 무척이나 낮다는 것이다. 타이거우즈의 불륜은 당연히 지탄받아야 할 일이지만 내가 그를 지탄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탕자의 비유에서의 주인공 - 큰아들
누가복음 15장에서는 세리와 창기들과 어울리는 예수님을 디스하려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예수님은 탕자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창녀들과 함께 해먹어 버리지만 오히려 아버지는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은 기뻐하며 맞는다. 이 이야기에서 탕자가 돌아오는 장면에서 분노하는 큰 아들이 사실 주인공인데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큰아들에 비유하며 디스한 셈이다. 죄의 결과가 사망임은 성경에도 분명히 나와 있다. 하지만 그 죄악을 품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용납하지 못하는 자신은 또 얼마나 의로운가?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개싸움을 마다하지 않으신 예수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죄악에 대해서 구별되어야 한다. 그것은 죄악에 대한 내 순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죄에 대해서 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회를 오래 시간 다니고 흔히 교회에서 말하는 일컫는 죄악에서 멀어지면 마치 내가 죄악을 이긴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사실 살다보면 이런저런 죄를 저지르게 되는데 예수님도 본인이 온 이유를 죄인을 위해서 왔다고 말하고 있다.
(마태9장 12~13절)
11.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2.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교회에 갇혀서 자신이 죄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교회도 사람이 모인 곳이라 싸움이 일어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힐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일반 교인끼리는 싸울 일이 많지는 않다. 다툼과 분쟁은 눈앞에 이익과 손해가 보이는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기 쉽다. 내가 죄를 완전히 극복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내가 치열하게 살지 않고 있는지를 의심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죄를 완전히 극복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은 죄를 예수님이 해결해준다는 믿음을 가진 것이다. 예수님을 믿어도 죄를 지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자리에서 죄를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먼저 만난 것은 내 자랑이 아니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세리와 창기처럼 괴로워하며 예수님을 찾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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