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사실일까?
교회를 다닌지 오래되었지만 성경에 나오는 기적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성경에 등장하는 기적을 검증하는 것은 교회 밖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이 없기 때문에 묻지 못했고 감히 교회 안에서는 물어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번 생각해 보면,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인 창세기에 나오는 기적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출애굽기는 실존했던 이집트의 역사와 같이 진행되고, 예수님은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거기 등장하는 기적들을 문구 그대로 믿기는 좀 어렵다. 믿음이 강해서 해당 기적들을 적극적으로 부정하지 않을지라도 그 감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당시의 기록들 특유의 과장이나 혹은 과학이 등장하기 이전에 믿음을 주기 위한 양념이나 장치 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개인적으로는 성경의 기적들이 흥미롭기는 했지만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지 않았고 설령 기록된 상당수의 기적들이 거짓으로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지금 가진 믿음을 철회할 것 같지는 않다.
세대가 구하는 표적
믿기 위해 기적을 요구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마태12:39) 말씀하셨다. 기적은 사람들에게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켜 신앙의 길에서 멀어지게 하기도 한다. 현재 교회에 넘치는 기적은 교회의 수적 성장과 그 구성원들의 사회적 성공이다. 교회는 부유해졌고 유능한 성도가 늘어났다. 과거 믿음의 근거가 되었던 기적은 현대사회에서는 사회적 성공으로 대체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가 양적성장을 이뤘을지는 모르지만 이 때문에 교회는 사회적 가치와 차별화에 실패했다. 성경에 나오는 맛잃은 소금 비유처럼 교회는 여기저기서 마구 밟히고 있다. 나는 예수님 믿어 성공한다는 가르침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한 것인지 모르겠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마 16:4)
능력으로서의 기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에 기적은 필요하다. 성경에서 가장 큰 기적인 천지창조를 보면, 만약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다면 그에게 예배할 이유가 무엇일까? 작게는 교회에 다니면 축복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구약의 욥처럼 고난을 받는다면 과연 교회에 올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일단 나는 가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무언가를 믿음으로써 작은 기적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모든 사람이 동일하다.
예수님이 공인한 기적
사실 예수님도 많은 기적을 전략적으로 사용하긴 했다. 하지만 예수님이 공인한 표적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없다. 예수님의 공인한 표적인 요나의 표적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이었고 이는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십자가의 고난을 그대로 받은 것은 예수님이 행했던 기적 중에 그냥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밖에 예수님이 했던 많은 일 중에 부정할 수 없고 정말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만들어준 기적은 당시 소외받던 세리와 창기를 만났던 것일 것이다.
무력한 기적의 힘
지금 교회가 추구해야 할 기적이란 무엇일까? 교회는 ‘예수 믿어서 이렇게 성공했어요.’가 아닌 ‘실패하고 가난해도 괜찮아요.’ 라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그 전능함으로 로마를 붕괴시키기 보다 세리, 창기와 같은 패배자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낭비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세상물정 모르는 가르침을 전달하다가 무력하게 죽었다. 비싼 밥 먹고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이 했던 그 무력한 기적을 행하는 것이다.
'주일을 보내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의미_롬7장 (0) | 2019.11.28 |
---|---|
죄악과 구별_탕자의 비유_눅 15장 (0) | 2019.11.14 |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0) | 2019.06.09 |
하나님 말씀의 힘 (0) | 2019.03.31 |
우상이 되어버린 예배참석 (0) | 2018.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