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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방법_이렇게 가르쳐볼까?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대화 뿐이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대화 뿐이다

 

죽음을 체험하다.

아기 키우는 것 어때?”라고 결혼이나 출산을 앞둔 친구가 물어보면 난 이렇게 대답한다.

좋긴 한데마치 죽음을 체험하는 것 같은 기분이야.”

과장이 많이 섞여있지만 내 진심이다. 인간은 그렇게 진화해왔을 것이다. 성장하고 난 뒤에는 인생의 상당부분을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살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사는 의미보다 내 아이가 사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삼십대 전부를 아이를 키우는데 쓴 것 같다. 나의 모든 목표와 계획이 아이에게 맞춰져서 돌아갔으나 난 삼십대를 허송세월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부모의 월권이 시작된다. 아이의 인생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지분에 불과하다. 그나마 그 지분률은 갈수록 떨어져서 나중에는 부모의 영향력은 소액주주 수준이 된다. 아이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대화 뿐이다.

 

강도가 아닌 빈도(횟수)이다.

부모는 주주에 불과하다. 내가 아무리 능력있는 주주라고 해도 아이를 대신해서 살아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주주의 한계이다. 아이를 대신해서 살고 싶다면 남아있는 자신의 인생에서 그렇게 살면 될 것이다. 한편 부모의 애타는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경험 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자식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은 아이를 키우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때로는 큰소리가 나기도 하고 심지어는 때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순수한 마음과는 달리 방법이 틀리다면 아이들은 그 순수한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반항하려는 마음만 강해진다. 아이에게 전달할 때 중요한 점은 빈도이지 강도가 아니다. 먼저 아이의 마음을 공감하고 자신의 감정을 전하려는 시도를 수차례 반복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방법말고는 다른 방법도 없다. 자신을 돌아보자. 큰소리 한 번 듣거나 한 대 맞고 고쳤던 적이 있었는지를

 

아이가 아이를 돌본다.

내 성장과정을 돌아보면 어른들에게 혼났던 몇몇 장면이 기억난다. 당시 들었던 생각은 내가 잘못하긴 했는데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하는 것이다. 정답은 아니었지만 나름 재치있게 한 대답에 갑자기 눈이 돌아가면서까지 매를 때렸던 선생님, 읽기 교과서를 외워오라는 말도 안되는 숙제를 내고 외우지 못한 문장마다 한 대씩 때렸던 선생님 등등지금 보면 내가 잘못했다기 보다는 그 선생님들이 당시 화가 많이 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나를 돌아보면 어떤가?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낸 상황을 돌아보면 열에 아홉은 아이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 화를 낸 것이 아니라  내 분을 못 이겨서 화를 냈다. 내가 마음이 급했다거나, 혹은 이전에 다른 일 때문에 화가 나 있었던 상태였다. 아이가 한 일만 생각하면 그 정도로 화낼 일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아이를 훈육하는데 충격요법으로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안에서 끌어오르는 화를 견디지 못했을 뿐이다. 아이들을 보면 그들의 욕구에 솔직하다. 눈 앞에 먹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화를 내는 내 마음은 그들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성숙한가? 포장하는 방법만 배웠을 뿐, 사실 그들과 비교해서 더 나을 것도 없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때릴 수 없는 이유이다


참고: 현명한 부모가 꼭 알아야할 대화법, 신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