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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필요한 의학지식

예방접종과 면역체계

예방접종과 면역체계

 

1급 전범 수용소

아이를 낳고 나서 받게 되는 아기 수첩의 주된 기능은 예방접종내역을 기록하는 것이다. 수첩에 나온 예방접종 스케줄을 보면 그동안 인류와 싸워왔던 악명높은 병들이 모여있다. 마치 1급 전범들의 수용소 같다. 하나같이 병명은 익숙하나 증상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전부 예방접종 때문에 그 병의 증상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DNA에 새길 수 없었던 적들의 기록을 이렇게 다른 방법으로 남겨서 극복했다. 아기수첩을 보던 중, 인류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보는 것 같아 감동이 몰려왔다.

 

내 몸은 공동체

원시다세포생물은 다른 단세포생물들과 공생을 하고 있었는데, 이 공생 과정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면역계를 발달시켰다고 한다. 고등 생물로 진화할수록 더 많은 세균과 함께 공생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면역시스템은 더더욱 복잡해졌다. 공생하는 세균의 대명사는 대장균이고 당연히 공생하는 세균의 대표적인 거주지는 소화기이다. 실제로 장 내부는 사실 몸 밖과 같은 위상이라고 한다. 장 안에 있는 유해한 세균들이 정말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장기내에서는 점액 등을 분비하거나 공생박테리아를 이용한다고 한다. 몸의 안팎이 혼동되는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흔히 내 몸이라고 할 때, 그 안에 나와 공생하는 박테리아도 포함하는 것일까? 나 자신의 범위도 혼동되는 부분이다.

 

기억의 힘

예방접종은 감염능력이 없거나 약화된 병원체를 몸속에 주사하여 항체를 형성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한번 들어온 병원체를 기억해서 적절하게 대응하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이용한 것인데 이를 후천면역이라고 한다. 후천면역은 그 상대를 가리지 않고 항원과 싸우는 선천면역과는 달리 특정한 세포에만 적용하는 면역이다. 효율적이고 경제적이긴 하나, 특정한 적에만 적용되므로 반드시 예전에 한번 싸워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감기 바이러스가 백신이 없는 것도 감기바이러스 특유의 어설픈 복제 과정 때문에 돌연변이가 심해 예전에 싸워본 데이터가 더 이상 소용없어지기 때문이다.

 

부작용

나는 개인적으로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데, 이는 면역반응에 있는 부작용이다. 고양이가 가진 어떤 물질이 내 몸에 들어왔던 일이 있는데 내 몸은 이 물질을 적으로 인식하고 데이터를 기록해 둔 것이다. 실제로 다른 사람은 무시하고 있는 물질인데도 내 몸은 기억하고 있다가 고양이를 키우는 처가 집에 방문할 때마다 재채기가 나오게 한다. 최근에는 자신의 면역시스템이 자기자신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도 많이 보고되고 있다고 한다.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자가면역질환의 치료방법 기생충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 역시 재미있다.

 

아이들을 통해 배운다

면역시스템은 인간 진화의 산 증인이자 역사 그 자체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인간의 생물학적인역사를 들춰보게 된다. 지금은 게을러져서 잘 보지 않지만 첫째를 낳고 열심히 봤던 육아백과에는 기초적인 의료 지식이 많이 나와있었고 너무나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둘째 딸의 예방접종 시즌이 되어서 다시 한 번 찾아본 아기 수첩을 보니 다시 우리 몸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