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상 후퇴_내가 육아휴직을 쓴 이유
작전상 후퇴
“도망치는 거에요”
책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김보통 저)에서 저자가 퇴사하면서 동료에게 던지는 말이다. 10년간 일한 회사에서 나오면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혹은 나 자신에게 설명한 목적으로 현실을 포장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나도 도망치는 것이었다. 10년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좋은 회사에 다니면서 가족도 부양했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해서 예쁜 딸들 과도 만날 수 있었다. 현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회사를 다녀야 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회사 내에서 내 한계가 뚜렷해졌다. 그래서 난 도망쳤다. 부끄럽지는 않다. 오랜 시간 지켜보고 견뎌본 결과, 패색이 짙어서 퇴각한 것이다. 패배한 것은 아니다.
내 육아휴직의 의의
아무튼 직장생활은 휴직으로 이어졌다. 육아휴직. 10년차 남자 과장의 육아휴직이다. 사실 우리회사에서 남자 육아휴직의 계보는 몇 년 전부터 계속 이어지기는 했다. 남자의 육아휴직은 매번 인사시즌마다 누가 쓰느냐의 문제이지 유무가 문제는 아니었다. 내 육아휴직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첫째로는 남자육아휴직의 계보를 이었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남자육아휴직 최초로(공식적으로 확인하진 않았지만 내가 알기론 그렇다) 1.5년을 썼다는 것이다. 순수한 육아휴직은 아니었지만 향후 순수한 육아휴직을 생각하는 남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의도는 순수하지 않았지만 결과가 순수했던 일들이 세상엔 많다.
육아휴직의 원인
난 좀 힘든 부서에서 일한 경험이 많다. 일반적으로는 새벽 6시반에 출근해서 저녁 8시정도에 퇴근하는데 접대하다 보면 새벽2시가 되고 같은날 새벽6시 반에 출근하는 팀에서 일했다. 일하면서 ‘이러다가 이혼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같이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하는 팀에 있기도 했는데 시간대만 달랐지 일하는 시간은 마찬가지다. 물론 8시에 출근해서 7시에 퇴근했던 상대적으로 편한 팀에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라는 존재론적 의문이 지속적으로 들었다. 물론 힘든 팀에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힘이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그에 따른 보상은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내 기준에는 열심히 했지만 부장이나 팀장 눈에 띄지는 못했다. 좋게 포장하면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궂은 일을 하는 캐릭터였고, 사실 투명인간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아마 나를 두고 한 이야기일 것이다. 보이지도 않는데 난 왜 그렇게 일을 열심히 했을까? 아마 열심히 하는게 맞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과 같다.
정리하면 직장생활은 내게 힘들었고 회사입장에서 볼 때 성과도 좋지 못했다.
눈에 대한 첫번째 이야기_노안
몸에 서서히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올해 초에 모니터의 글자가 너무 안보여서 안과에 갔다. 안과에 가면서 병명 말고는 정확한 증상도 모르지만 ‘이건 분명히 백내장이나 녹내장일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의사는 ‘노안’이라고 했다. 36세에 온 노안. 사실 별 것은 아니었다. 노안은 누구에게나 오니까. 나도 농담으로 동료들에게
“나 노안진단 받았어. 얼굴이 아니고 눈이…”
라는 멘트를 여러 번 날렸다. 하지만 역류성식도염이 심해지고 있었고 기억력도 약해져서 전체적으로 늙고 있다는 느낌을 받던 내게 ‘노안’이라는 진단은 “너 늙었어!”라는 선고였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 사건이었다.
눈에 대한 두번째 이야기_난시와 원시
6살인 첫째 딸은 현재 안경을 쓰고 있다. 난시와 원시가 심해서 교정목적으로 쓰고 있는데 올해 처음으로 안과에 갔을 때 의사가 얼굴이 벌개지면서 질타했다.
“지금에야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애가 이렇게 난시와 원시가 심한데… 원시는 교정될 수 있지만 난시는 평생 안고 가야 할 수 있습니다.”
딸에게 미안했다. 사실 1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건강검진 때, 동네 소아과 의사가 시력이 좀 나쁜데 안과에 가 보라는 말을 했었다. 당시 나는 하루 15시간을 일하고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미뤄두었을 것이다. 건강검진에 딸을 데려간 것도 할머니나 아이를 봐 주시는 이모님이었을 것이다. 내가 직접 들은 것이 아니어서 흘렸을 수도 있고, 혹은 부탁을 했어야 했는데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혹은 아이가 한글을 몰라서 시력검사에 한계가 있겠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안과 의사가 화를 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의 눈은 점차 성인의 눈처럼 자라면서 점차 조직을 완성해 가는데 6살정도면 이미 눈의 구조가 자리를 잡아 시력 교정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무엇이 그렇게 중요해서 딸의 간단한 치료를 1년이나 늦췄을까? 하는 회한이 몰려들었다.
지금 당장 빨리빨리
두 가지 이야기는 서로 이어지면서 나를 다그쳤다.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가? 이제 시간이 없다 당장 대답해야 한다.” 나는 10년동안 미뤄왔던 내 대답을 당장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올해 7월 육아휴직을 했다. 더 늙기 전에 내 가족과 나 자신에게 더 중요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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