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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해 본 생각

집 보는 남자의 넋두리(부제: 환율이나 좀 오르면 좋겠다)

집 보는 남자의 넋두리(부제: 환율이나 좀 오르면 좋겠다)

 

막이 내리고 지금은 집에 있다.

지난 20177, 난 회사와 우리 가정에 과감하게 육아휴직을 던졌다. 남성의 육아휴직에 대해서 앞으로 얼마나 시각이 좋아질 지는 모르지만 일반적으로는 아직 차갑다. 돌아간다는 가정을 하고 쓰기는 아직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휴직이라고 표현하지만 흔히 말하는 경력단절에 가깝다. 나의 경우에는 사실 퇴사를 염두한 육아휴직이었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을 돌아보면 회사로 다시 복귀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준비했던 사업은 환율이 1130원에서 1060원대까지 내려가면서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닌 생존여부를 테스트 받고 있다. 환율의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어서 차후에 환율이 오를 것을 예측해서 적극적으로 사업을 하기 보다는 상황을 보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약간 의지했던 주식투자는 이상하게 4분기 지지부진했고 새로 시작했던 옵션 투자는 실려나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참패했다. 그래서 지금은 집에 있다. 살림하면서.

 

비용절감

그동안은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아이를 봐주시는 이모님께 월 160만원 정도를 드렸다. 또한 주말이면 점심/저녁을 모두 나가서 사 먹었기 때문에 외식비가 만만치 않았다. 내가 집에 있으면서 그런 비용은 줄일 수가 있다. 대신 주말이 좀 빨리 간다. 밥하고 설거지하고를 반복하면 어느새 일요일 저녁이 된다. 시간이 좀 있으니 장도 좀 싼 곳으로 가서 하고 있다. 특정 물품이 싼 코스트코도 가고, 소량의 식자재를 살 때는 마트가 아닌 근처 시장에 가서 장을 본다. 앞선 인건비와 외식비에 비하면 좀 소소하지만 그래도 좀 비용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용절감은 예전 직장생활의 수입에 비해 눈에 띄질 않는다. 결국 분담금을 못 내니 가정내의 사회적 지위가 쪼그라들 수 밖에자격지심인지 혹은 내가 와이프의 내면변화를 섬세하게 감지해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내의 말 한마디가 무척 신경 쓰인다.

 

육아휴직의 선기능

부모 중 한 명이 집에 있으면 좋다. 육아 때문에 퇴직을 선택한 직원들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다소 경제적인 손실이 있지만 크게 보면 얻는 것이 더 많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요즘 같은 겨울철 아이들은 한 달에 주기적으로 아픈데, 이전 맞벌이 때는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너무 열이 많이 나면 어머니나 이모님께 부탁해야 했고, 가벼운 증상만 있어서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하면 어린이집 눈치가 보였다. 아이가 아픈 날이면, 무리해서 둘 중에 한 명은 일찍 와야 했다. 나는 아이가 둘인데, 꼭 두 명이 돌아가면서 아팠다. 순서대로 아프다보니 한 달 중 절반이 넘는 기간이 아픈 날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내가 집에 있으면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맘이 놓였다. 아이가 열이 나면 그냥 내가 돌보면 그만이다.

그 밖에도 혹시 아이를 괴롭히거나 방치하지는 않는지, 식사는 어떤 것을 먹이는지,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여주지는 않는지 등의 사소한 문제들도 내가 직접 하면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은 편하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아이들도 내 앞에선 아빠가 있어서 좋다고 한다. 첫째의 말에 의하면 밥은 집보다 어린이집에서 먹는게 맛있다고 하니, 내가 보기엔 진실이다.


육아휴직 선기능의 단 한가지 문제

부모 중 한명이 집에 있는 것이 이렇게 좋은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집에 있는 내가 남자라는 것이다. 애초 육아휴직을 시작했을 때, 최악의 경우 집에서 살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인사 시즌에 집으로 발령받았는데 팀장이 와이프인 기분일까?’ 하는 농담으로 가볍게 넘겼는데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사회전체적인 시각이 살림하는 남자에 대해서 어색하기 때문인데 우선 나부터 그렇다. 현재 내가 일에 투입하는 시간은 집안일을 하고 남는 낮의 2시간 정도와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밤의 2시간 정도인데, 일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렇다고 집안일을 다 접고 사업에 투자할 수는 없는 일이고아내는 집안일을 좀 해주실 아주머니를 써 보자고 하는데, 먼저 비용을 쓰기가 좀 부담스럽다. 아무튼 진퇴양난이다. 환율이나 좀 오르면 좋겠다.

 

주업을 집안일로 정하다

아무튼 현재 내 1사업부는 집안일이다. 주된 집안일이라고 하면 요리와 청소인데 별로 인정받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여 최대한 빠르게 준비해서 일하는 시간을 확보하는게 목표이다. 하지만 상당부분 시간을 할애할 수 밖에는 없으니, 연구를 좀 해서 주업에서도 일정부분 성취를 이루고 싶다.

개인적으로 요리는 좀 관심이 있다. 휴직 이후에 다양한 재료로 최대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들에게 해 줄 목적으로 40분 이내에 두가지 정도의 반찬을 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집밥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냉장고 관리 및 메뉴관리를 잘 해서 식재료나 음식을 버리지 않는 것인 것 같다. 아무튼 이 분야는 지속적인 연구와 투자가 필요하다.

청소는 단순히 시간을 먹는 일인 것 같다. 청소라는 개념을 좀 크게 보면 인테리어나 공간배치 와 같은 다양한 디테일이 있는 분야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별 관심이 없다. 목표는 무조건 빨리 일정수준의 청소를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청소기로 청소하던 것을 로봇청소기로 바꾸었고 욕실 청소는 너무 자주하는 것 같아 횟수를 좀 줄이려고 한다.

 

아침은 먹여야지

2017 1월 한국일보에 따르면 집에서 살림하는 남자가 16만명으로 역대 최대라고 한다하지만 전년도 여성 가사노동자는 720만명으로 비율로 보면 남자 가사노동자는 2%정도 된다. 아직 나는 2%에 속하고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 내가 좀 낯설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무튼 내일 애들 아침은 챙겨서 보낼 생각이다. 집안일을 전업으로 5개월 정도 해보니 생각보다 일이 많다. 흔히 여성들의 가사노동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못 받는다고 하는데 남성들의 가사노동은 더 한 것 같다. 이제 난 여성들의 어려움을 상당부분 공감한다. 그런데 우리 아내는 나를 공감할까? 마지막으로 이 글의 주제를 다시 한 번 되뇌어본다. 환율이나 좀 올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