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아
둘째가 가끔 잠들기 전에 엄마를 찾으면서 울 때가 있다. 그때마다 하는 말이 엄마는 자기보다 아빠나 언니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냥 흘려들을 수 있는 5살의 잠투정이기도 하지만 첫째도 아내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졌던 것을 보면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것 같기도 하다. 3년 전, 내 육아휴직으로 인해 우리 부부는 아내가 직장생활을 하고 내가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분업을 했다. 아내는 내 육아휴직 이후에 회사 일에 ‘전념’했는데, 주중에는 아이들이 잠드는 10시 이전에 돌아오지 않았고, 주말에도 수시로 출근을 했다.
한국인은 미쳤다
육아 휴직 전, 나도 회사에서 하루 14~16시간이 넘는 업무시간을 소화했다. 그때는 내가 과연 가족의 구성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중에는 아침 7시에 나와서 10시가 넘는 시간에 퇴근했는데 그냥 나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웠다. 한참 야근을 하던 때에는 광화문에서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매주 주말 광화문에 나갔는데, 집회참석이 목적이 아니라 회사에 쌓인 업무를 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인은 미쳤다.’라는 책에서 저자는 무식한 농부, 군인의 이미지인 한국사람들이 일본기업을 제치고 세계 1위를 탈환한 이유를 한계를 초월한 인적자원의 동원으로 꼽았다. 내 주변에 물어보면 12시간 정도의 업무강도는 적정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당시에는 너무 긴 근무시간으로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집에서 내 노고를 인정해 주지는 않았다. 아내는 왜 그렇게 늦게 오느냐고 핀잔을 줬고, 아이들은 매번 약속을 어기는 것에 대해서 섭섭해 했다. 나는 새삼 약속을 어기지 않는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임을 깨달았다.
입장이 바뀌었다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황은 비슷하지만 입장은 바뀌었다. 나는 아내처럼 상대를 말로 괴롭히지는 않지만 그녀의 고생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뿐, 100% 인정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바쁜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사실, 아내는 예전의 나처럼 회사에 열심히 다닌 것뿐이다. 자기만족이든 아니면 가족을 위한 희생이든 어쨌든 회사에서 아내가 힘든 것도 생활비를 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아내는 도대체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돈 문제
삶의 질과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나와 아내는 비교적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둘의 월급을 합치면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10년이 넘는 직장생활동안 집을 옮기는 것 이외에는 여력이 없었다. 올라버린 집값을 생각하면 신혼 때 집을 사서 시작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애초에 집을 사기엔 자본이 너무 없기도 했다. 자산 증식의 첫걸음인 서울 아파트 구매는 양가 부모님의 출자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도 불가능한데, 출자를 요구하는 것은 부모자식간이라도 선을 넘는 것이다. 아무튼 대출이자, 아파트관리비, 기본적인 식비, 의복비, 차량유지비 등을 고려하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한 명 월급이 사라진다. 뉴스에서 보면 누군가는 집을 몇 백채씩 가지고 있다고 하고, 길에는 외제차가 즐비한데, 어떻게 하는 건지 정말 물어보고 싶다.
배려받지 못하는 맞벌이
비상식적인 강도로 진행되는 일반기업의 업무환경을 모르는 공무원의 탁상공론 때문인지 혹은 아이교육은 학교와 부모의 협업이라고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매달 별 논리없이 수시로 튀어나오는 자유휴업일과 같은 제도를 보면 학교는 맞벌이 가정을 전혀 고려해주지 않고 있다. 자유휴업일은 보통 하루짜리 공휴일과 주말 사이에 실행되는데, 이 존재를 모르는 회사 관리자 입장에서는 얌체같이 휴가를 써서 하루짜리 휴가를 연휴로 만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도 매번. 상당수 많은 여성들이 과거의 성역할에 얽매여 가정에서 많이 희생하고 있겠지만, 맞춰주기 버거운 학사 일정은 아마도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분란의 씨앗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분란이 몇 번 있다보면, 차라리 한 명이 그만두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맞벌이에서 외벌이의 체제 변환은 안 그래도 빡빡한 생활에 사실 채택하기 어려운 선택지이다. 때문에 아이는 애초에 낳지 않는게 생존에 유리하고 설사 현실을 모르고 아이를 낳았더라도 한 명만 낳을 수 밖에는 없다. 이 집단지성의 사고 결과는 출생통계 작성 이래 최저라는 2018년 합계출산율 0.98명으로 나타났다.
돈과 시간 문제
육아휴직을 하고는 아내가 집안일을 거의 ‘내려놓았’기 때문에 이 계기로 평등한 성역할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은 평등한 성역할 이전에 살인적인 노동환경에 대해서, 맞벌이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주거환경, 생활비 등에 대해서 이야기가 더 필요하다. 현재처럼 임금 대비 많은 시간을 일하면 육아가 불가능하다. 백번 양보해서 한 명이 자신을 온전히 바쳐 일하는 ‘희생’으로 온가족이 먹고 살 수 없다면 육아는 불가능하다. 백번 양보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자신을 그렇게 바칠 사람도 없다. 저출산을 어떻게든 타개해 보려고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잔재주를 부리지만 육아는 장난감 몇 개 빌려주고 용돈 좀 쥐어준다고 선뜻 진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문제는 부모는 돈과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돈, 시간, 그게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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