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을 한지 어느덧 6개월이 넘어간다. 그동안 집안일과 일을 병행하면서 생각보다 집안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일단 집안 일의 양이 생각보다 많았다. 내 일이 있기 때문에 집안일은 최대한 간단하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또 막상 하다 보면 욕심이 나서 일을 하는 시간에도 집안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청소, 요리, 빨래를 하다보면 혼자서는 현상 유지도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이 보육시설에서 돌아오는 저녁 시간에는 아이들을 먹이고 잠들기까지 그 날의 요리와 청소 설거지를 완료하려고 하면 정작 아이들과는 놀 시간이 없기 때문에 집안일을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아이들과 놀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서 좋기는 한데 집안일이 내일로 미뤄 지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부담이 된다.
육아휴직을 하고 난 뒤 아내와 사이가 안 좋아지기도 했는데 내 휴직 이후에는 아내가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내는 주중에 12시간이 넘게 일하는데, 사실 얼굴 볼 일도 많지 않고 기대할 수도 없는 환경이다. 하지만 주말에 오전 늦게까지 잠을 자거나 오후에도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은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어서 큰 소리가 나온다. 아마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남녀의 역할이 바뀐 모습이 연출되겠지만 육아휴직을 해 보니 이런 광경도 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자의 가사노동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어서 대부분의 내 또래 남편들은 감히 주말에 침대에 누워서 쉬는 일은 없을 것이고, 나 역시 그랬다. 주말은 아침을 준비하는 것을 시작으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성역할을 바꿔 보니 내 아내는 60년대생에게 볼 수 있는 성역할 체계를 머릿속에 갖추고 있었다. 예전에는 주중에 힘들었던 남편에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있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분을 도저히 이길 수 없어서 그랬음을 알겠다. 집안일은 육아와 병행하기엔 버겁다. 육아를 집안일과 병행하기엔 어렵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만약 내가 전업주부라면 어떨까? 아마 좀 더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 일을 하고 있지만 주말에 아내가 늦게까지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 ‘내가 내는 분담금이 줄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내 머리 속에도 남편은 돈을 벌고 아내는 육아와 살림을 하는 모습이 더 익숙하지 그 반대의 모습은 익숙하지 않다. 주변의 가정을 보면 아내가 전업주부를 할 경우 주말에 남편이 누워있는 모습을 가끔 찾아볼 수 있다. 부부의 문제는 둘이서 알아서 할 문제이지만, 합의만 된다면 나름 합리적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남자가 가정주부인 경우, 남편은 무엇이라도 해야할 것 같은 부담이 생길 것 같다. 내 경험담이 그렇다. 변화는 이뤄지고 있지만 적어도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아직은 남자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2012년 여성가족부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내가 일하고 남편이 전업주부를 해도 괜찮다는 의견이 42.4%로 많은 의식전환이 있었지만 아직 남편 전업주부는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남자 전업주부는 ‘백수’라고 생각하는 주변의 시선 때문일 수도 있고 왠지 움츠러드는 자기 자신의 생각이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남자 주부는 현재 사회 분위기로는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사회는 변하고 있고 언젠가는 분업을 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 분업은 가정의 사정에 따라 형태가 달라질 것이다. 결국 남성이 육아와 가사를 맡는 것도 당연해 질 것이다. 집값과 사교육비용이 끝을 모르고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육아에 있어서 돈의 중요성은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다. 결국 부모는 경제적인 부분과 아이들과 정서적인 부분에 있어서 최적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 최적점을 찾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노동에 많은 시간을 요구하고 있다.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 하루에 12시간 일했다면 나름 일찍 끝났다고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8시에만 끝나도 그 날은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8시 퇴근은 저녁이 있는 삶이었을 수는 있어도 아이들과 어울리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다. 우리 아이들은 9시반이면 침대에서 누워 잘 준비를 하는데, 8시에 회사에서 퇴근을 한다면 아이들과는 ‘잘 자’라는 인사를 하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결국 아빠가 아이들과 놀아주려면 6시 칼퇴근해서 저녁을 집에서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변하고 있지만 아직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내가 누워있는 아내에게 화를 내면서도 찜찜한 것은 주중에 12시간이 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고 어쩌면 나는 사회에 내야하는 화를 가깝고 편한 아내에게 내고 있는지 모른다. 사회 전반적으로도 힘없는 두 사람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고 그 결과는 가정당 한 명이 겨우 넘는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다.
'그냥 해 본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가정이 한 명의 아이를 겨우 낳는 나라의 미래 (0) | 2018.03.12 |
---|---|
생각의 도구, 언어능력에 대해서 (0) | 2018.03.11 |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기회 육아 (0) | 2018.03.08 |
아빠의 훈육방법 (0) | 2018.03.06 |
[율린티비] 2화. 올림픽기념 퀴즈대회 (0) | 2018.03.05 |